2011년 5월 21일 토요일

[MBC스페셜]도시의 개[GM]', 댓글 모음(보관용)

육식문화는 권능이 있으면 자기 쾌락과 자기 강화를 위해서 다른 이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것이 별 문제 없다는 의식과 분위기가 만연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또 앞서 늘로님께서이 지적하신 것처럼 “소도 먹으니 개도, 개도 먹으니 고양이도.. 라는 논리라면 사람도” 위험하게 되죠. 개만 안 된다는 사람들의 주장에 오류가 있는 것처럼 앞의 논리에도 오류가 있습니다. 자기가 지금 희생량이 되지 않아도 언제든 그렇게 될 수 있는 분위기에서 사람은 불안해집니다. 타인에 대한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고요.



고기 먹으면 즐겁죠. 고기에는 감칠맛 수용체를 자극하는 성분이 많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감칠맛은 입맛을 계속 당기게 하죠. 자위를 해서 사정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쾌락을 선사합니다. 이치만 놓고 따지자면 생존을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 육식을 하는 것은 성폭행을 하는 것과 차이가 없습니다. 자기 쾌락을 위해 타자를 도구화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도구화는 그 대상을 종종 죽음에 이르게 하죠. 방법은 여러가지입니다.



타자를 쉽게 도구화하는 사람들은 싸이코패스인 경우를 제하고는 대개 누군가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인 것 같습니다. 알고나면 도무지 역겨워서 하기가 힘들어지죠. 사람 죽이면 법적으로 제제가 가해지기 때문에 안 죽이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고통받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최근 뇌과학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측은지심이라는 것이 가능하게 하는 뇌의 기능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설도 있더군요.



현대적인 방식으로 고기가 생산되기 위해서는 많은 비상식적인 과정들이 필요합니다.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고기가 필요합니다. 많은 양의 고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빨리 생산해야 합니다. 빨리 생산하기 위해서는 이것 저것 잡다한 과정은 생략되어야 하지요. 도축 시에 순식간에 죽게 하는 장치가 있다고는 하지만 많은 경우 헛발질을 하게 되고 많은 소, 돼지 등등이 의식이 생생한 상태에서 해체 단계를 맞이 하게 된다네요. 쉽게 말해 산채로 가죽이 벗겨지고 배가 열리고 내장이 흘러내리고 몸의 구석 구석이 잘려나가게 되는 것이죠. 빠른 생산과 인도적인 도축은 대치하는 개념입니다. 지금과 같은 생산 방식으로는 인도적인 도축은 공상과학에 불과할 뿐입니다. 식육 산업의 폐해에 대해 다룬 책들은 요즘 차고 넘쳤습니다. 아무 책이나 한 권 집어 봐도 이런 사실은 금방 알 수가 있죠.



그리고 이건 대부분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 한 사실인데요. 그런 식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이 비명을 지르며 해체되고 죽어나가는 광경을 바로 앞에서 바라보는, 그 과정을 진행하는 노동자들 중 많은 수가 여러 가지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고 있다고 하네요. 제 정신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죠. 살려고 발버둥 치는 것들은 죽인다는 것이 얼마나 정신적인 상흔을 남기는 지는 굳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합니다.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는 베트남전 참전 군인만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튼 요지는 육식주의 문화는 세계 전체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식육산업에 따른 환경오염도 이미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고요. 기분 좀 좋자고 고기를 먹어도 되는지 이제는 좀 생각해볼 때가 된 것이죠. 지금도 많이 늦었다고 많은 이들이 말하고 있지만 그래도 조금 씩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옳은 일겠죠. 많은 학자들이 인간은 신체구조상 채식을 할 때 더 건강하다고 합니다. 고기는 소화시키는 것부터가 문제라고 하는군요. 소화효소가 부족하데요. 고기를 먹는 것이 많은 질병과 관계되어있다는 것은 의학의 발전을 통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생존을 위한 경우가 아닌 육식문화는 축제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주장입니다. 그 축제의 본질은 자기 권능의 과시이고 그 안에서의 안도라고 합니다. 다른 종들과의 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주인임을 뽐내는 것이죠. 하지만 과연 그런 식의 과시가 필요한 것인지는 생각해볼 일이죠. 그러지 않고는 정말 안도할 수 없는 것인지 각자에게 물어보았으면 합니다.



좀 더 평화로운 곳에서 살고 싶은 바람에 글을 적다보니 횡설수설에 너무 장황해졌네요. 혹시 다 읽어주신 분이 계시다면 감사합니다. 육식주의가 당연시 되는 분위기가 어서 빨리 타파되었으면 좋겠네요.



너도 잘못 했으니 나도 잘못 좀 하자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해서 의견을 묵살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고요. 그런 식으로 따지는 것은 문제가 되는 행위의 결과는 어떻게 되도 상관없다는 식의 분위기를 만들 뿐이죠. 논쟁이 단순하게 싸움이 되고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데서 그친다면 논쟁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승자가 권력자가 되어서 ‘멍청한’ 패자들에 명령하는 것이 논쟁의 본질이라면 애초부터 논쟁을 할 것이 아니라 무력 다툼을 하면 될 일이지요. 논쟁의 논의의 연장입니다. 상대의 논리적 헛점을 공격하는 것은 물론 중요합니다. 단,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논리적 오류를 통해 문제의 실체가 드러나는 경우에 한해서만 그것은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 것이죠. 이미 동물권 보호 단체라든지 개고기 금지 운동 단체들이 많은 논쟁에서 논리적 헛점을 드러내고 공격을 받았지요. 패자가 되었고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패자가 되고 웃음거리가 된 것에 대해서는 별로 개의치 않으나 문제의 본질이 드러날 기회마저 그대로 박탈당한다는 것이 참 아쉽네요. 이겼으니까 경기 끝 이제 나 건들지마라는 태도로 일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논쟁에서 승자와 패자가 갈리고 경기가 끝난 시점부터는 적개심을 거두고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도울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 새끼는 왜 저 지랄인가?’라는 마음을 가지고 그 원인을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네요. 물론 패자가 소수이고 약자일 경우일 때 더욱 말입니다.



‘종종 식물도 생명인데 동물은 되고 식물은 안 된다는 법이 있느냐?’라고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식물 역시 죽음을 피하려고 애쓰는 생명이고 동물과는 다른 방식으로 고통을 인지합니다. 생명이기 때문에 먹어서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곧 아무 것도 먹지 말라는 말과 다른 바가 없습니다. 흙을 주워 먹는다고 해도 그 안에는 미생물들이 있고 결국에는 살생을 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죽은 고기를 먹는다 하여도 거기에는 이미 미생물들이 스스로의 삶을 위해서 부단히 애쓰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연히 생존을 위해서 피할 수 없는 경우라면 동물이고 식물이고 가리지 않고 음식으로 삼으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선택일 것이고 그것은 비난받아서는 안 되는 것이겠지요.



앞의 주장은 완전히 초점을 잘못 맞추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앞서 말한 것처럼 생명을 먹어선 안 된다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결국 굶어죽어야 한다는 말 밖에는 안 됩니다. 하지만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말부터 ‘사람’인데요. 살고 싶은 게 사람이지요.(살다, 삶, 사람) 하지만 음식을 취하되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죽음과 고통은 최소화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모든 생명은 삶을 지향하니까요. 물론 선택입니다. 죽음과 고통에 무관심하는 것은 선택할 수도 있지요. 그러한 문화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관성적으로 그렇게 행동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문화에서 비롯하는 분위기 아래에서 과연 평화와 행복이라는 것이 가능할지는 의문입니다. (저는 반대하고요. 평화와 행복을 방해하는 무리와는 정치적으로 투쟁할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고통과 죽음을 없애자는 것이 아닙니다. 줄이자는 것입니다. 없애는 것은 부가능한 일입니다. 그러자고 하는 것이 유치한 발상이지요. 하지만 줄이는 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좀 더 느슨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셨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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